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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왜 주춤, 일본은 어떻게 도약했을까? 수학 발전의 숨겨진 이야기

by 픽샘_Pick Master 2025. 3. 20.

조선과 일본은 비슷한 시기 외국 문물을 접했지만, 수학 발전의 길은 달랐습니다. 조선의 정치적 상황과 지식의 흐름, 일본의 적극적인 서양 문물 수용까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쉬엔샘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고려와 아랍의 교역을 통해 왜 수학이 크게 발전하지 못했는지 알아보았는데요. 이번에는 시선을 조금 옮겨 조선 시대일본을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조선 역시 중국을 통해 외국 문물을 접했지만, 일본처럼 서양 수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눈부신 발전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과연 그 배경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요? 흥미진진한 역사 속 수학 이야기와 함께, 일본 수학 발전의 놀라운 결실인 과학 분야의 노벨상과 같은 위상을 가진 수학계의 최고 영예, 필즈상과 더불어 아벨상 이야기까지 풀어보겠습니다!

 

굳건했던 조선의 전통, 더욱 강력했던 왕권과 관료 사회

1392년 건국된 조선 왕조는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고 유교, 특히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을 중심으로 한 관료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양반 계층은 높은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권력을 누리며 조선 사회를 이끌어갔습니다. 이러한 안정적인 정치 시스템은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사상이나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다소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조선 시대의 은 강력한 권한을 가졌지만, 동시에 신하들의 견제를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학문과 사상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고,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과 질서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물론 세종대왕과 같이 과학 기술 발전에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왕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수학과 과학은 국가 운영의 핵심적인 학문으로 여겨지기보다는 실용적인 기술의 영역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선, 중국으로부터 과학 기술을 받아들였지만…

조선은 오랫동안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문물을 교류했습니다. 천문학, 역법, 의학 등 과학 기술 분야에서도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실제로 조선의 역법은 중국의 역법을 바탕으로 발전했으며, 천문 관측 기구 역시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중국의 과학 기술을 수용하는 데 있어서도 일정한 한계를 보였습니다. 사대주의적인 관점에서 중국의 것을 최고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고, 서양의 새로운 과학 기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조차 서양 과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이전이었던 시기도 있었기 때문에, 조선이 서양의 선진 수학과 과학을 중국을 통해 접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 쇄국의 문을 열고 서양 문물을 적극 수용하다

반면,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맞이한 일본은 조선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일본은 서양의 과학 기술이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라고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수학 또한 예외는 아니었죠. 일본은 서양의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고, 유학생을 파견하며, 서양인 학자를 초빙하는 등 전례 없는 적극적인 자세로 서양 수학을 배우고 연구했습니다.

왜 조선은 일본처럼 서양 수학을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조선이 일본처럼 적극적으로 서양 수학을 받아들이지 못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 정치적 안정과 변화에 대한 소극성: 오랜 기간 안정적인 왕조를 유지해 온 조선 사회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반면, 메이지 유신은 일본 사회 전체를 뒤흔든 혁명적인 사건이었고, 변화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 지식의 흐름과 인식 부족: 조선은 주로 중국을 통해 학문과 기술을 받아들였고, 서양의 수학과 과학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습니다. 또한, 서양 학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일본만큼 강하지 않았습니다.
  • 쇄국 정책의 영향: 조선은 후기에는 쇄국 정책을 펼치면서 서양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제한적이었습니다. 이는 서양의 새로운 학문을 접할 기회를 더욱 줄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쇄국의 문을 열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 수학에도 예외는 없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일본은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으로 인해 서양과의 교류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하지만 1853년 페리 제독의 등장으로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면서 일본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메이지 유신이라는 대변혁을 통해 일본은 서양의 발전된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했고, 과학 기술과 함께 수학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국가의 부강을 위해서는 서양의 선진 학문, 특히 수학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서양의 수학을 배우고 연구하기 시작했죠.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일본은 서양의 미적분학, 선형대수학, 해석학 등 다양한 분야의 수학을 빠르게 받아들였습니다.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 구축과 인재 양성

일본이 서양 수학을 성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점입니다. 서양의 교육 제도를 모델로 하여 근대적인 학교를 세우고, 수학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뛰어난 인재들을 유럽이나 미국으로 유학 보내 서양의 선진 수학을 배우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동시에 외국인 수학자들을 일본으로 초빙하여 일본의 학자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는 고려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고려는 아랍과의 교역은 있었지만, 서양의 수학을 체계적으로 받아들이려는 국가적인 노력이나 교육 시스템이 부족했습니다.

기초 학문부터 응용 분야까지, 폭넓은 수학 연구

일본은 서양 수학을 단순히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연구 역량을 키워나갔습니다. 기초 순수 수학은 물론, 물리학, 공학, 정보학 등 다양한 분야에 수학을 융합하여 응용하는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적분학은 공업 발전에 필수적인 도구였고, 선형대수학은 통신 기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일본은 배운 것을 실질적인 발전에 활용하며 수학의 저변을 넓혀갔습니다.

수학계의 양대 산맥, 과학의 노벨상과 같은 위상의 필즈상과 아벨상

여기서 일본 수학의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수학계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며 과학 분야의 노벨상과 같은 위상을 가진 필즈상아벨상입니다! 필즈상은 젊은 수학자들의 뛰어난 업적을 기리기 위해 4년에 한 번씩 수여되는 최고의 영예로운 상이며, 아벨상은 평생에 걸쳐 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수학자에게 수여되는 또 다른 권위 있는 상입니다. 이 두 상은 수학 분야에서 가장 명예로운 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일본은 이 필즈상을 수상한 뛰어난 수학자들을 배출했습니다! 고다이라 구니히코(小平邦彦) 선생님은 1954년에, 히로나카 헤이스케 (広中平祐) 선생님은 1970년에, 그리고 모리 시게후미 (森重文) 선생님은 1990년에 각각 필즈상을 수상하며 일본 수학의 높은 수준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는 일본이 외국 수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꾸준히 연구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다이라 구니히코 선생님의 경우, 복소수와 기하학을 융합한 복소다양체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를 인정받아 필즈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아쉽게도 현재까지 아벨상을 수상한 일본 수학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하지만 필즈상 수상자 배출은 일본 수학의 뛰어난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과 일본, 다른 선택이 다른 결과를 만들다

조선과 일본은 모두 외국과의 교류를 경험했지만, 외국 학문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조선은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취한 반면, 일본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서양의 수학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발전시키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선택의 차이가 결국 수학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뚜렷한 결과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통해,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수학은 딱딱하고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재미있고 강력한 도구라는 것도 함께 말이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며 정리해 볼까요? 조선은 전통 학문을 중시하며 서양 수학 수용에 소극적이었던 반면,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수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교육 시스템을 혁신하여 빠르게 수학 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과학 분야의 노벨상과 같은 위상을 가진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그 위상을 높였습니다. 비록 아벨상 수상자는 아직 없지만, 이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국가와 개인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