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正祖)와 정약용(丁若鏞).
이 두 사람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이름일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열하게 '미래'를 고민했던 인물들입니다.
📑 목차
1️⃣ 왜 지금 정약용과 정조를 다시 주목해야 할까?
"우리가 지금 이 사람들을 다시 이야기해야 할까?"
아마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답은 분명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근대화",
그보다 훨씬 앞서 조선을 바꾸려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정조(正祖)와 정약용(丁若鏞).
이 두 사람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이름일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열하게 '미래'를 고민했던 인물들입니다.
2️⃣ 18세기 말, 조선은 어디로 가고 있었는가?
18세기 후반 조선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거대한 모순을 품고 있었습니다.
- 부패한 양반 체제
- 무너지는 농업 경제
- 심화되는 신분 불평등
- 민중의 불만과 분노
이러한 위기 속에서,
조선은 두 가지 선택지 앞에 서 있었습니다.
✅ 하나는,
기존의 질서를 강화하고 변화를 억누르는 것.
(실제로 다수의 지배층이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 또 하나는,
새로운 시대를 향해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
(이 길을 걷고자 한 사람들이 바로 정조와 정약용이었습니다.)
3️⃣ 정약용과 정조가 꿈꾼 조선
정조는 왕권 강화를 넘어,
신분을 초월한 인재 등용, 실용적 학문 장려, 과학기술 진흥을 시도했습니다.
정약용은 정조의 뜻을 이어받아,
실학(實學),
수학·기하학·천문학,
법치주의,
**민본주의(백성 중심 통치)**를 구체적인 제도로 옮기려 했습니다.
특히, 정약용은 천주교(서학)를 통해
서양 과학, 수학, 철학까지 받아들이며
조선식 근대화를 꿈꿨습니다.
만약 그들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조선은 일본보다도 훨씬 먼저
과학과 인권, 실용적 제도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나라가 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4️⃣ 그리고,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꿈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 정조의 급사
- 정약용의 유배
- 서학(천주교) 박해
- 보수 기득권의 완강한 저항
결국 조선은 문을 닫고 스스로 쇠락의 길을 걸었으며,
근대화는 일본 메이지 유신보다 한참 뒤로 밀려나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만약 정조와 정약용이 끝까지 뜻을 펼칠 수 있었다면,
조선은 메이지 유신보다 먼저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을까?
그리고,
오늘 우리는 이들의 꿈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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