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감샘입니다.
오늘은 제가 오랫동안 토론을 심판하면서, 그리고 책을 ‘말하기 연습의 재료’로 삼으면서 깨달은 책 읽기의 본질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책을 많이 읽으면 생각이 깊어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읽기만 하고 말하지 않으면, 생각은 절대 깊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개인적 느낌이 아니라, 뇌과학이 아주 명확히 말해줍니다.
1. 책을 읽어도 말이 막히는 이유 — 선언적 학습과 절차적 학습
뇌과학에서는 학습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 Declarative Learning (서술적 학습)
“무엇을 알고 있는가(knowing that)”
— 사실, 정보, 지식을 기억하는 방식입니다. - Procedural Learning / Memory (절차적 학습)
“어떻게 하는가(knowing how)”
— 반복을 통해 몸이 기억하는 기술, 자동적 수행, 언어 생성의 기반입니다.
(참고: Procedural memory, Wikipedia; Koch et al., 2020, Georgetown Univ.)
우리는 책을 읽을 때 거의 대부분 서술적 학습만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말할 때 머뭇거리게 됩니다.
책 내용을 ‘아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아주 큰 간극이 있습니다.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절차적 학습입니다.
2. 절차적 학습이 되면 ‘말이 술술 나온다’
— 제가 실전 토론에서 경험한 바로 그 순간들
저는 토론 심판을 자주 하다 보니, 토론 준비를 하면서 책을 그냥 읽지 않았습니다.
책의 내용을 가지고 계속 말하기 연습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 이 주장에는 어떤 반론이 나올까?
- 상대가 이렇게 반박하면 나는 뭐라고 답할까?
- 이 문장을 한 줄로 말한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계속, 정말 계속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몇 번은 소리 내어 말했습니다.
그렇게 반복하고 또 반복하니, 어느 순간 신기한 경험이 찾아옵니다.
실전에서 반론이 들어오면, 머릿속에서 문장이 ‘자동 재생’되듯 떠오르고,
입이 그냥 저절로 움직입니다.
정말 ‘술술 나온다’는 말이 어떤 건지 그때 알았습니다.
이건 지식의 힘이 아니라,
절차적 학습이 만들어낸 자동성(automaticity)입니다.
뇌과학 연구에서도 procedural memory가 반복적 언어 생성에 직접 관여한다고 설명합니다.
3.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차적 학습을 못할까?
— 읽기만 하고 ‘실행’을 안 하기 때문이다
절차적 학습이 어려운 이유는 단순합니다.
- 읽는 것 → 선언적 학습
- 말하는 것 → 절차적 학습
읽기만 해서는 절차적 학습이 생기지 않습니다.
말해야 합니다.
반복해야 합니다.
실제 상황을 상상하고 입 밖으로 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독서를 지식 습득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용은 아는데 말이 잘 안 된다’는 허탈함만 쌓입니다.
절차적 학습은 반복, 사용, 실행이 전부입니다.
‘입을 사용하는 연습 없는 독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4. 제가 책을 읽는 방식 — 토론 심판식 독서법
독서로 절차적 학습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안 합니다.
제가 쓰는 방식을 그대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책의 주장·개념을 ‘상대의 말’로 바꿔보는 것
“상대가 이 말을 한다면?”
2) 내가 그 말에 어떻게 질문하거나 반론할지 떠올리기
“그렇게 말할 근거가 뭐지?”
“다른 사례는?”
3) 그리고 반드시 ‘소리 내서’ 말해보기
속으로만 생각하면 절대 절차적 학습이 안 됩니다.
4) 최소 2~3번은 다른 방식으로 말해보기
다른 단어로 설명하기, 한 문장으로 압축하기 등.
5) 다음 책에서도 다시 반복
책마다 구조는 다르기 때문에 자동성이 점점 강화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책 읽기는 단순한 ‘지식 입력’이 아니라
말하기 근육을 만드는 훈련이 됩니다.
토론뿐 아니라
- 강의
- 발표
- 면접
- 글쓰기
모두에서 강력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5. 책 읽기가 ‘설득력’을 만드는 진짜 이유
우리는 말합니다.
“책 많이 읽는 사람이 말도 잘한다.”
저는 이 문장을 이렇게 바꿔 말하고 싶습니다.
“책을 읽고 말하는 사람이 말도 잘한다.”
아는 것을 말로 옮길 수 있을 때,
지식이 진짜 힘을 발휘합니다.
‘내가 읽은 책이 나를 말하게 한다.’
이 감각을 한 번 경험하면,
독서는 더 이상 수동적 활동이 아닙니다.
그건 전적으로
당신의 입을 움직이고, 생각을 흐르게 하는
능동적 훈련 도구가 됩니다.
결론 — 책 읽기는 ‘말하기 훈련’이어야 한다
당신이 정말 책을 통해 성장하고 싶다면,
읽기만 하지 말고 말해야 합니다.
- 책 속 관점을 입으로 꺼내보고
- 반론을 상상하고
- 상대가 있을 것처럼 말해보고
- 목소리를 내며 반복해보세요.
그러면 어느 순간
당신의 머리와 입은 ‘자동화’되기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그 순간,
책 읽기는 인생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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